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MBC 광복절 특집극 '절정', 이육사의 절정을 담다. - 첫번째 이야기






먼저, 감히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혼자 마음 속에 담아둔 응어리같은 걸 풀어내고 싶어서 자판을 한 자 한 자 누르게 된 걸 글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광복 특선 드라마라지만 9월 10일 밤에 재방송이 될 때에야 보게 되었다. 그것도 DMB로. 그 전까지는 이 드라마에 대해서라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절정'이 떠 있었고, 그저 이육사의 역을 맡은 이가 아이돌가수 출신의 김동완이었다는 것 밖에는 알지 못했었으니까. 




 드라마 절정은 안동의 절경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몇 주 전 잠시 다녀왔던 안동의 정취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낙동강이 품은 천혜의 고장, 안동. 실제 이육사 시인은 1904년, 경북 안동 도산면에서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태어나게 된다.  올망졸망 5형제 중 둘 째 원록(源祿), 그가 세상에 태어나며 가졌던 첫 번째 이름이었다.  


조부 치헌 이중직과 어린 원록의 대화. 

    

  
똘망똘망하던 아역에서 성인연기자로 탈바꿈한 원록.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이육사 시인의 이미지와 비슷해서 놀랐다.  안경 때문인가? 김동완이라는 사람한테 끼고 있던 색안경이 약간 벗겨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실제 이육사 시인)[각주:1]


원록은 17세 때 안일양과 혼례를 올리게 된다. 그리고 본래는 원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극에서는 나오지 않았으나)
극 중에서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독을 닦으며 풀어내려 한 일양에게 시조를 읊어주고, 일양은 마음이 동하여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실제 이 시는 이육사가 신석초(1909∼1975)에게 보낸 엽서 안에 담겨 있던 시조이다. 실제 시인은 편지에서 다소 여성적인 내용이 쑥스러운듯 시조 앞에 “하도 답 안오내니 또적소, 웃고 보사요”라는 머리글을 붙였다.[각주:2]



극 중 시조 낭송






그리고 원록은 일본행을 결심한다. 가서 듣고, 보고 오기 위해. 실제 이육사는 1924년, 그가 약관의 나이에 접어들자 유학길에 오른다. 


그리고 그의 발이 닿은 곳은 교토.





왜곡된 식민지 근대화론이 담긴 '조선'이라는 책을 읽는 육사에게 한 남자가 다가온다. 일본의 전통 의상을 입은 한 남자. 책의 내용이 틀린 말이 없다고 하는 이 남성의 정체를 알기 전 까지는 일본인인 줄 알았다. ;; 
 

캡쳐가 엉망이네요;; 


그리고 이어지는 관동 대지진. 실제 관동 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에 일어났으며, 이육사의 일본 유학은 1924년이었다. 극의 드라마틱한 전개를 위해 끼워넣은 듯 싶다. 1923년도의 이육사는 백학학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지진을 피해 건물 밖으로 나온 육사는 곧 일본 자경단 학생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실제로 관동 대지진으로 인하여 조선인들은 극심한 고통을 당하였다. 왜 하필 15엔 50전이냐 물었는가 하면, 위키 백과, '간토 대지진'에 적혀 있다.  일부를 인용해 본다. 


우선 조선식 복장을 한 이는 바로 살해당하였으며, 학살 사실을 알고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일본식 복장을 한 조선인들을 식별해 내기 위해서 조선인에게 어려운 일본어 발음(한국어에 없는 어두유성음 및 종종 정확하게 발음되지 않는 장음 발음(撥音)등으로 이루어진) 「十五円五十銭」(じゅうごえんごじっせん)을 시켜보아 발음이 이상하면 바로 살해하였다. 이 때, 조선인뿐만 아니라, 중국인류큐인, 외자 성을 강제당해 조선인으로 오인받은 아마미 제도 출신, 지방에서 도쿄로 와 살고 있었던 지방의 일본인(특히 도호쿠 출신)들도 발음상의 차이로 조선인으로 오인받고 살해당하는 등, 자경단의 광기는 상상을 초월할만큼 잔악했다.[각주:3]








이때 육사를 위기에서 구출해 준 이는 아까 일본의 근대화론을 긍정적으로 보던 남자였다. 그는 육사에게 자신 역시 조선인임을 밝히고는 간토 대지진으로 인한 조선인들의 참혹한 현실을 그에게 여과없이 이야기해 주었다. 실제 당시 일본에서 퍼졌던, 조선인이 독을 풀었다는 등의 괴소문들을. 그리고 눈 앞에서 조선인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육사를 데리고 돌아간 이 남자는 조선인들을 성당에서 보호해 준다는 말을 들어도 가게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술을 딱 두 잔만 마신다. 내기에 진 후 정탐하러 나가는 그에게 육사는 이름을 물었다. 윤세주. 그는 독립운동가였다. 




정탐하러 나간 그가 돌아오지 않자 밖으로 나간 육사는 불타는 성당과 도망가는 조선인들을 목격했다. 그리고 들었다. 성당에 모인 조선인들이 잔인하게 죽어갔다는 비참한 소식을. 모두 속았던 것이다. 실제 관동 대지진으로 6천 여 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학살당했다. 개인적으로는 3.1운동 후에 일어났던 제암리 교회 학살사건이 떠올랐다. 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 조선인들을 교회에 몰아두고 일으켰던 일제의 만행. 육사는 그 사이에 세주를 찾아 해메지만 세주는 어디에도 없었다. 
 


자경단의 잔인한 횡포를 생생히 목격하고, 게다가 세주의 생사를 알지도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폐인이 되어 꼬박 몇 계절을 앓아눕기만 했다. 그러나 한 겨울날, 세주는 육사를 찾아온다. 일본을 배우러 간 것이 아니냐던 세주의 말에 피를 깔고 앉은 이들에게 문명이란 존재할 수 있냐며 받아치는 육사. 세주는 그의 마음 속에 분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세주에게 분노란 항일운동의 원동력. 좋은 날이 온다면 취하려 술은 두 잔 이상 받지 않는 세주. 그가 좋은 날을 기다리는 마음과 육사의 의지는 일맥상통이었다. 


윤세주가 세번째 잔을 비워두는 이유





  실제 이육사는 1925년 10대 후반에 가족이 대구로 이사한 뒤 형제들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북경에서 수학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귀국한 1927년, 그 해 일어난 10월 18일 일어난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장진홍 의거)에 연루된 혐의로 형인 원기, 동생 원일과 함께 처음 투옥되었다가 2년 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왔다. 그의 필명 이육사는 대구교도소 죄수번호 二六四에서 나왔다. 이름이 아니라 수인번호로 약 2년을 살았던 이육사. 극 중에서는 고문을 당하고 신음하는 그가 환상을 보며 교도소 벽에 쓴 시, <말>이 등장한다. 실제 <말>은 그의 첫 작품으로, 1930년 조선일보에 발표되었다. 당시 필명은 이활이었다.
극 초반에 보면 너른 절경 아래 말을 타기도 했던 어린 이원록의 모습이 나온다. 이육사의 고향이었던 원촌마을은 이곳 원촌마을은 옛날에 '말맨데', 즉 말을 맨 곳(마계촌 馬繫村)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가운데 뒷산으로 올라가는 골짜기를 마차골이라 부른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러다가 '말멘데'가 '먼먼데'로 바뀌고 한자로 표기하던 먼 곳, 즉 원촌(遠村)으로 변한 것이라고 전한다.


이육사, <말>
 



 戮史. 극에서는 부인 안일양이 잔인한 戮이라는 글자를 보고 陸으로 바꾼다. 그리고 그 것을 본 육사에게 들키고, 그리고 네이버 연관검색어에도 올라와 있는 폭풍키스신도 나오기도 하던데... ㄷㄷ




실제로는 죽일 육(戮) , 역사 사(史) 육사(戮史)라는 이름을, 바로 이어서 고기 육(肉) 설사할 사(瀉)를 사용했다. 그러나 집안 아저씨인 이영우가 " 육사(戮史)는 역사를 죽인다는 표현이니,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말 아닌가? 의미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차라리 같은 의미를 가지면서도 온건한 표현이 되는 '陸史'를 쓰는게 좋겠다"고 권했다. 라고 전해진다. (이육사 문학관 참조) 


 앞으론 누가 바깥양반 이름이 어찌 되냐 묻거든, 이육사라 하시오. 

 
 



실제 이육사는 중외일보, 조선일보에서 일을 하며 대구 격문 사건으로 잡히기도 했다. 이전에 장진홍 의거 때 언급되었던 격문사건은 이를 말하는 것이었으리라.  극이다보니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있는 듯 하다.  극 중 육사는 아들의 이름도 짓지 않고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세주와의 재회.  이 때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육사는 위에도 언급하였듯 10대 후반에 형제들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었다.  




그리고 난징 근교 탕산에서 문을 연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 학원(學員)으로 입교하여 군사간부 교육을 받았다. 이 때가 그의 나이 28세였다. 이 때 입교 동기로 처남인 안병철도 있었다. 양반가의 샌님이 담아내기엔 힘들었던 군사훈련 속에서 그는 시를 쓴다. 이 때 극 중에서 나왔던 시는 <황혼>이다.  

황혼
 






 세주는 겉으로 유약해 보이는 육사를 내심 걱정하며,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육사를 경성 중외일보로 파견보낸다. 실제 육사는 학교에 입학한 이듬해 4월 20일 1기생으로 졸업하고 국내로 돌아온다. 4월에 국내에서 '자연과학(自然科學)과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 , <레닌주의철학의 임무> 등을 투고한다.  그리고 5월에 상하이로 이동, 6월 상하이에서 루쉰(魯迅)을 만나 정세를 의논했고, 7월에 서울로 잠입했다.
그가 암호를 듣고 나가는 것으로 1부는 종료된다. 






(두 번째 이야기에 계속됩니다. 언제 포스팅하련지는 모르겠지만요...)









알리는 글 

 -
 해당 영상의 저작권은 MBC에게 있습니다 ㅠㅠㅠㅠ 방송사 로고 안ㄱ가린게 좀 걸리긴하네
 

 - 자료들은 위키백과 이육사이육사 문학관 홈페이지 등을 참조하였습니다. 시의 출처들 역시 이육사 문학관 홈페이지입니다. 

 - 문제가 될 내용은 바로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

 - 저작권 고나리가 무서워요 ㅠㅠ






 

  1. 네이버 인물 검색 [본문으로]
  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0070809 [본문으로]
  3. http://ko.wikipedia.org/wiki/%EA%B0%84%ED%86%A0_%EB%8C%80%EC%A7%80%EC%A7%84 [본문으로]